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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세월을 뛰어넘은 인생 냉면의 추억

세월이 흘러도 가슴속 깊이 각인되어 결코 잊히지 않는 맛과 장소가 있습니다. 서울 중구 오장동의 길목에서 중부건어물시장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오장동흥남집’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까마득한 어린 시절,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때 부모님과 함께  처음 발을 들였던 그곳의 풍경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바로 어제 일처럼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 시절 오장동 본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카운터에서 단단하고 위엄 있는 표정으로 손님들을 맞이하시던 6·25 피난민 출신의 할머니 사장님이 계셨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느껴지던 그분의 강인하면서도 온화한 눈빛, 그리고 매콤하고 고소한 참기름 향이 코끝을 알싸하게 자극하던 실내 공기는 단숨에 저를 맛의 세계로 매료시켰습니다.

 

국민학교 졸업식 날에도, 중학교졸업식 날에도, 고등학교졸업식 날에도,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축하하던 날에도 우리 가족의 외식 장소는 항상 오장동흥남집이었습니다.

자라나며 세상을 배우고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흥남집의 냉면 한 그릇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우리 가족의 기쁨과 추억을 함께 나누는 거룩한 성찬과도 같았습니다.

 

 

1953년 오장동에서 시작된 함흥냉면 역사

오장동흥남집이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이들의 인생 맛집으로 사랑받아 온 배경에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이북 피난민들의 삶이 깃들어 있습니다.

흥남집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함경도 흥남에서 서울로 내려온 피난민들에 의해 오장동 터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던 중구 오장동과 건어물 시장인 중부시장 일대는 자연스럽게 이북식 함흥냉면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함흥냉면은 메밀을 주재료로 쓰는 평양냉면과 달리, 고구마 전분을 사용하여 쫄깃하고 찰기 넘치는 면발을 자랑합니다.

여기에 동해안에서 갓 잡은 간재미 (홍어) 회 를 새콤매콤하게 무쳐 면 위에 올려낸 회냉면은 가난하고 고단했던 피난 시절 피난민들의 시름을 달래주던 최고의 별미였습니다.

 

진하게 우려낸 사골 육수의 고소함과 특제 양념장의 매콤함, 그리고 씹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간재미 회무침의 조화는 오장동흥남집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가로 부상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서울 과 분당지역 오장동흥남집 위치도

 

중부시장 장길과 부모님의 피난길 기억

부모님 역시 6·25 전쟁 당시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오신 피난민 출신이셨습니다.

타향살이의 고단함 속에서도 자식들을 위해 밤낮없이 음식 장사를 하셨던 부모님의 삶은 언제나 땀방울로 젖어 있었습니다.

장사를 위해 좋은 식자재를 구하러 자주 찾으시던 곳이 바로 흥남집 길 건너편에 위치한 중부시장(현 중부건어물시장)이었습니다.

 

중부시장의 활기찬 건어물 시장을 둘러본 뒤, 도로를 건너 흥남집으로 향하던 부모님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고향을 떠나온 피난민이라는 공통된 아픔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타향에서 고향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부모님은 흥남집 냉면을 드실 때마다 늘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한 감회를 느끼시는 듯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걸었던 중부시장의 정겨운 길목과 흥남집 문턱은  유년 시절의 따스한 기억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생선 가시 트라우마 이겨낸 회냉면 매력

사실  남들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음식에 대한 트라우마가 하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휴일이면 종종 한강으로 낚시를 나가시곤 했습니다.

 

아버지가 낚싯대로 커다란 붕어나 잉어 같은 민물고기를 잡아 오시면 어머니는 식구들을 위해 정성껏 민물고기 매운탕이나 찜 요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국민학교 입학하기 전 유년 시절 어느 날, 밥을 먹다가 민물고기 가시가 목구멍 깊숙이 걸려 커다란 통증과 함께 응급 처치를 받아야 했던 무서운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생선 요리에 극심한 트라우마가 생겼고, 생선으로 만든 음식이라면 자연스럽게 손사래를 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트라우마조차도 완전히 무너뜨린 유일한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오장동흥남집의 ‘간재미 회냉면’이었습니다. 흥남집의 간재미 회는 오독오독 씹히는 특유의 식감과 함께 가시가 전혀 불편하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다듬어져 나옵니다.

 

붉고 진득한 특제 비빔 양념에 절여진 간재미 회를 쫄깃한 고구마 전분 면발에 싸서 한 입 가득 넣으면, 어릴 적 생선 가시에 대한 무서운 트라우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감탄사만 터져 나왔습니다.

 

생선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만들 만큼 강렬했던 그 한 그릇의 맛은 제 인생 최고의 별미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장동흥남집 지점별 영업 현황 및 정보

어릴 적 부모님 가던 오장동 본점 외에도, 현재는 여러 직영점과 체인점이 운영되어 가까운 곳에서 흥남집의 맛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대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지점(서울/분당지역)들의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오장동흥남집 본점
  2. 오장동흥남집 신림직영점
  3. 오장동흥남집 판교점
  4. 오장동흥남집 AK플라자 분당점

 

AK플라자 지하1층 메뉴주문 하는곳

 

💡 AK플라자 분당점 최근 방문기

오늘 추억의 맛을 다시 느끼기 위해 AK플라자 분당점 지하 1층 푸드코트에 위치한 오장동흥남집을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대표 메뉴인 회비빔냉면(13,000원)과 고기비빔냉면(13,000원)을 주문했습니다.

 

 

AK플라자 지하1층 오장동 흥남집

 

 

백화점 푸드코트 특성상 진동벨이 울리면 음식 받아오는 곳(픽업대)으로 가 쟁반을 받아옵니다.

픽업대에는 따뜻하고 구수한 온육수를 직접 컵에 담을 수 있게 준비되어 있고, 개인 쟁반 위에는 식초와 겨자가 음식과 함께 깔끔하게 세팅되어 제공됩니다.

만약 고소한 참기름이나 달콤한 설탕을 더 첨가하고 싶다면, 픽업대에 구비된 양념을 취향껏 더 뿌려서 자리로 가져오면 됩니다.

 

따뜻한 온육수 한 모금으로 먼저 속을 부드럽게 달랜 뒤, 개인 식초와 겨자를 살짝 첨가해 냉면을 슥슥 비벼 맛을 보았습니다.

푸드코트 형태라 본점과는 셀프 픽업 방식이 조금 다르지만, 한 입 들이키는 순간 "역시 흥남집!"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오장동 흥남집 고기비빔냉면

 

 

오장동 흥남집 회비빔냉면

 

 

매콤달콤한 특제 양념과 찰진 고구마 전분 면발, 그리고 오독오독 씹히는 간재미 회의 조화는 50년 전 오장동 본점에서 부모님과 함께 먹던 그 맛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습니다.

 

탄식이 절로 나오는 이 쫄깃한 면발, 솔직히 바로 이 맛 때문에 지금까지 오장동흥남집을 잊지 못하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함께 주문한 고기비빔냉면 역시 부드러운 수육 고기와 양념이 어우러져 깊은 풍미가 느껴졌습니다.

 

회비빔냉면 고기비빔냉면 맛있는 메뉴사진

 

원산지 표시판

 

오장동 흥남집 영수증

 

 

그리운 아버지 생각나는 쫄깃한 한 그릇

어느덧 50년이라는 까마득한 세월이 불꽃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릴 적 따뜻했던 내손을 꼭 잡아주시던 부모님은 이제 세상을 떠나시고 제 곁에 계시지 않지만, 오장동흥남집의 냉면 한 그릇은 여전히 그 시절의 온기 그대로 제 삶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오늘 식탁 맞은편에서 냉면 대접에 코를 박고 쫄깃한 면발을 신나게 볼이 터져라 맛있게먹고 있는 막내 자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순간, 시간의 태엽이 반세기 전으로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기이하고 가슴 뭉클한 착각에 빠져듭니다.

 

50년 전, 오장동 본점의 활기찬 소음 속에서 양념 범벅이 된 얼굴로 삐죽삐죽 냉면을 맛있게 먹고 있던 어린 나.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시던 나의 아버지.

 

지금 청년으로 훌쩍 자란 막내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눈길 속에는,

50년 전 나를 보며 흐뭇해하시던 아버지의 미소가 그대로 흘러나오며 완벽하게 겹쳐 보입니다.

 

세월은 흘러 나는 어느새 중년의 아버지가 되었고, 아버지가 주셨던 그 깊은 사랑은 냉면 한 그릇이라는 매개체를 타고 나의 자녀에게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생선 가시에 대한 무서운 트라우마마저 깨끗이 잊게 해 주었던 그 달콤매콤한 회냉면.

그것은 단순한 미각의 즐거움을 넘어, 시공간을 넘어 나와 아버지를,

그리고 나와 내 아이를 하나로 연결해 주는 소중한 시간 여행의 매개체였습니다.

 

부모님이 그리운 날,  또다시 성인이된  자녀들과 어깨를 맞대고 흥남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것입니다.

 

그 쫄깃한 면발 속에는 시들지 않는 우리 가족의 사랑과 그리운 추억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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